
2025년 들어 엔화 약세가 심화되면서
아시아 금융시장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하며 30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이 현상이 단순한 환율 변동을 넘어
역내 통화정책과 수출 경쟁 구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에는 호재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여전히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금리 인상 시점이 계속 미뤄지면서
달러 강세와 맞물려 엔화 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2024년 후반,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었음에도
BOJ는 경기 둔화를 우려해 완화 기조를 고수했다.
그 결과 엔화는 투자자들에게 ‘차입 통화’로 다시 인식되기 시작했고,
글로벌 자금이 엔을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가 활발해졌다.

이 현상은 아시아 금융시장 전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엔화 약세로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자
한국, 대만, 중국의 수출기업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자, 기계 산업 등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품목에서 수출 단가 압박이 커졌다.
같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다시 회복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엔화 약세는 한국 경제에 환율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엔화의 지속적인 가치 하락이다.
투자자들은 엔화 가치 하락이 이어질 경우
원화 역시 약세를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신흥국 통화 전반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아시아 지역의 자본 유입 속도가 둔화되고,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부에서는 엔화 약세의 효과가 단기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수출기업의 실적은 개선되었지만,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 물가가 압박을 받고 있다.
실질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
가계 구매력은 약화되고,
소비 중심의 내수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본 경기의 회복 속도를 더디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도 엔화 약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이 일본과 산업 구조가 비슷한 만큼
수출 경쟁력의 상대적 약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 자동차, 정밀기계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 격차가 벌어질 경우
중소 수출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환율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 완화 시점을
더 신중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엔화 약세의 장기화는
단순히 한·일 간 수출 경쟁 문제를 넘어
아시아 금융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위안화가 여전히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엔화마저 약세를 지속하면
아시아 전체 통화가 달러에 대해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달러 강세 국면이 길어지고,
신흥국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결국 엔화의 방향성은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에 달려 있다.
금리 정상화가 늦어질수록 엔화 약세는 구조적으로 고착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책 전환의 속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당분간 아시아 금융시장은
‘엔화 약세–달러 강세–원화 불안’이라는
복합적 환율 구도 속에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